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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트를 드디어 봤다. 몇 가지 느낀 점을 끄적여본다.
[1. 스포일러라고 말하려다가 이건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실화를 그린 영화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2. 여기서 말하는 ‘정부’, ‘은행’, ‘국민’ 등은 미국 정부/은행/국민을 뜻한다.]
 
부동산 버블 붕괴를 다양한 시점에서 다룬 영화가 계속 나와서 좋지만, 영화와 다큐가 섞인듯한 애매한 포맷이 거슬렸다. 고등학교에서 흔히 보던 재밌지도 않고 제대로 가르침을 주지도 못하는 교육 비디오를 본 느낌이다. 8년이 지난 지금 Subprime, CDO, Credit Default Swap, Ratings Agency 등등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이 영화만 보고 버블을 이해하기엔 너무 진행 페이스가 빨랐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소수의 똑똑한 기회주의자들이 다수의 멍청한 기회주의자들을 엿먹이는 스토리다. 영화에서도 사용한 비유인데 남의 집이 불타고 있는 사실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들이 그 집에 화재보험을 들어놓고 빨리 전부 타 없어지기를 기다린 셈이다. 필 굿 스토리가 아닌 건 알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기분이 아주 찝찝했다. 물론 감독이 의도한 결과일 것이다. 영화는 이런 찝찝한 기분을, 그 분노를, 어디로 향하게 해야 하는지 엔딩 크래딧 바로 전에 알려준다. 2015년에 bespoke tranche opportunity라는 또 다른 형태의 CDO를 은행이 다시 상품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결국 은행을 공공의 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게 옳은 태도일까?
 
물론 은행이 잘못했다. 욕을 먹어 마땅하다. 그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 본인들이 벌려놓은 일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르지 않았다. 아니, 거의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들어진 버블 붕괴에 관한 영화/다큐는 대부분 정부, 은행, 신용평가기관만을 탓한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무어의 <Capitalism: A Love Story>(2009)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정권부터 정부가 월가의 규제 완화를 시행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면서 집을 잃은 사람들은 피해자 그리고 정부/은행은 가해자로 열심히 묘사한다. 맷 데이먼이 나레이션을 한 <인사이드 잡>(2010)에서는 부시 정부가 초엘리트 그룹만을 위한 세금감면 정책을 통해 미국의 중산층을 없애는 기반을 마련했고 중산층이 사라지게 되면서 경제 활성을 위해 자연스레 이자율이 내려가고 그 결과로 대출이 늘었다고 주장한다. 늙을수록 멋있어지는 마이클 더글러스가 출연한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와 버블 붕괴에 관한 영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진 콜>은 둘 다 픽션이지만 월가의 욕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2011년이 돼서야 드디어 어느정도 균형 있는 할리우드 영화 <Too Big to Fail>이 만들어졌고 이 영화는 은행들이 왜 정부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대출을 있는 대로 받아 결국 집을 잃게 된 미국 시민들의 책임을 묻는 영화다. 정부 정책과 무책임한 은행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는 해도 결국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대출을 받아서 허황된 꿈을 꾼 사람들에게도 분명 책임은 있다. 집값은 무조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어리석은 무지가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공짜 돈을 있는 대로 은행에서 받아쓰게 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다큐에 출연한 집 잃은 사람들이 불쌍하면서도 허황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진 행위의 마땅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버블 붕괴는 단순하게 일방적으로 정부와 은행이 국민을 엿먹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돈에 눈이 멀어 행한 미친 짓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다만 그 대가를 힘없는 국민이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정부와 은행은 큰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두렵다. 힘겹게 대가를 치르고 있는 국민 조차도 대부분이 이 버블에 대해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수요가 있으면 공급을 할 수밖에 없는 은행들은 곧 또다시 큰일을 벌리기 시작할 것이다. 아니, 이미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버블은 항상 존재했고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다. 냉소적이다고 볼 수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그렇다. 빅쇼트를 보고 가장 크게 다시 느낀 점은 인간은 쉽게 변할 수 없고 돈에 대한 욕망이 계속해서 버블을 만들어 낼 것이며 그 버블이 터질 때마다 그에 대한 대가는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가 자제하는 힘을 키워서 능력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미친 가운데 나 혼자만 제정신이면 결국 누가 미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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